커버 스토리. 21세기 춘향이 이효정.
임권택 감독이 찾은 신세대 춘향이 이효정
21세기의 춘향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지금 까지 조선의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열녀로서의 춘향의 이미지는 맞지 않다. 신분 세습을 근간으로 한 봉건사회체제,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체제의 부당성에 맞서는 강한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갖춘 요즘 춘향이를 찾겠다’고 말했던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
임감독이 그런 춘향이를 찾았다.
이효정. 올해 16세. 서울 정신여고 1학년 학생이다.
한국여인의 옛스런 미를 갖추고 요즘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수 있는 이미지를 효정이는 갖고 있다고 임감독은 만족해 한다.
태흥영화사가 주최한 ‘춘향뎐’신인배우 공모에 몰린 21세기 춘향이 지망자들은 무려2천37명.
석달간에 걸친 3차 오디션 끝에 이들중 최고의 춘향이로 선출된 이효정양은 참신하고 풋풋한 새내기의 이미지가 그대로 풍겨나오는 신세대 10대 였다.
그러나 부모님이 반대 할까봐 신인배우 공모 오디션도 몰래 할 만큼 당찬 구석도 갖고 있는 그런 학생이다.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지원서를 냈어요. 임권택 감독님이 만드시는 작품이라는 설명에 무작정 원서를 낸거지요. 춘향이로 뽑힐 줄은 정말몰랐어요”
13번째 춘향이는 그렇게 탄생됐다.
사실 효정이의 배우에 대한 끼는 어려서부터 있었다.
인천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그는 1학년때 아역 TV탤런트로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신흥중학교2학교때는 학생잡지 ‘스트리트 캐스팅’란을 통해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돼 미국에서 LG 홍보영화를 찍기도 했고 또 존슨즈 베이비로션, 오리온 과자등의 CF에도 출연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내에 나가면 같은 또래의 남녀 학생들이 알아보고 반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개인적인 시간도 없고 또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조심을 하게 되요. 기대하고 있는 주변의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요즘은 과거에 제작됐던 춘향전도 보고 시간이 날 때 마다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 있다.
오전에 3시간 씩 거문고와 붓글씨 공부를 하고 있고 얼마전 부터는 그네 타는 연습도 시작했다.
덕분에 한달사이에 3Kg이 빠졌다고 효정이는 웃는다.
태흥영화사 송혜선홍보실장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숙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임감독님의 평가 입니다. 지금 갖고 있는 끼가 충분한 만큼 가르키면 훌륭한 재목이 될수 있다고 기대하고 계시지요. 열심하려는 의지가 있고 순진해요” 효정이에 대한 칭찬이 대단하다.
공부에 소홀해 질수 있다며 이양의 연기활동에 탐탁해 하지 않았던 부모님도 이젠 효정이의 든든한 후원자로 변했다.
두딸(이양과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에게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서울로 직장 까지 옮겼다는 이양의 부모였다.
그러나 이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접고 딸의 대사 파트너가 돼줄 정도로 효정이에 대해 각별한 정을 쏟고 있다.
“훌륭한 감독님의 지도를 받을수 있고 또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어 너무나도 기뻐요. 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연기자로 성장해 보답해야 겠다는 각오를 항상 다지고 있습니다”
이양이 출연하는 춘향뎐은 4월 중순경 촬영에 들어간다.
13번째가 될 임권택감독의 이번 춘향뎐은 대부분의 촬영이 춘향고을 남원에서 이뤄진다.
지금 까지는 서울과 경기지역 등에서 모형셋트를 만들어 찍었으나 원작의 배경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임감독의 의지가 반영돼 남원시내 광한루, 오리정, 관광단지 등에서 촬영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3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내년 신정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춘향뎐은 전액을 태흥영화사가 부담하고 전체 장면의 50%이상이 남원을 배경으로 하게 된다.
특히 남원관광단지내 춘향이가 살던 숙종시대의 옥사정, 설매집, 주막거리등은 철거하지 않고 오픈셋트로 만들어 새로운 민속체험촌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남원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춘향뎐 제작을 임감독은 서편제 시절부터 생각했었다고 한다.
“어느날 촬영지 헌팅을 다녀오는 길에 차안에서 들은 명창 조상현의 완창 춘향가는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편제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한 판소리의 진가를 언젠가 춘향뎐을 제작해 재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가을 임감독은 이같은 구상을 실현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춘향뎐 제작의 가닥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까지의 춘향전은 이야기만을 빌려서 만들어져 왔으나 원래 춘향전은 소설 이전에 이미 판소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번 춘향뎐은 판소리의 감동을 영상이 증폭해 주는 영화가 될것이라고 임감독은 밝혔다.
국창 인간 문화재 조상현의 춘향가가 영화 전반에 흐르고 전체적으로 보면 소리 꾼이 현대의 관객에게 춘향가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 한다.
판소리를 듣는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판소리가 무엇이며 춘향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화면속에 관객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함께 느끼고 고민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SFX영화에만 쓰인다고 생각했던 첨단 컴퓨터그래픽을 동원, 남원부중 등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사극의 현실감을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워 놓기도 했다.
춘향전의 내용을 원형 그대로 그려 냄으로써 감독의 특별한 해석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각기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 때문임은 물론이다.
“춘향가는 우리 풍속사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그런 보물들을 영상으로 재현, 한편의 방대한 기록필름 처럼 꾸미겠다”
이같은 임감독의 의지가 반영될 춘향전을 풋풋한 새내기 이효정은 얼마나 부응할수 있을 까.
임감독은 이에 대해 원래 영화에서 주인공을 신인으로 기용하는 것은 모험이나 다름없다면서 그러나 나는 장군의 아들에서 박상민을 서편제에서 오정혜를 기용했다. 춘향뎐의 이효정도 그런의미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한다.
기성연기자들의 고착된 이미지를 개량, 활용하는 것보다 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거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임감독은 역대의 춘향이들은 조미령, 최은희, 김지미, 홍세미, 장미희등 당대 인기 절정의 미녀 배우가 맡았지만 이번 기회에 춘향전의 원래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자로 작품의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고전적인 서구형 미인이 아니라 복스럽고 친근한 한국형 얼굴을 갖고 있는 이양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까지의 예쁘기만한 춘향이의 이미지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적격자라는 것이 임감독의 생각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춘향의 이미지가 바뀌어 온 것이 사실이다.
최초의 춘향이는 원작대로 기생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55년에 제작됐던 춘향이에선 청순 가련형의 춘향이었다.
그러다 61년엔 지조가 강한 현모양처형의 춘향이가 그려졌고 70년대 부터는 발랄하고 경쾌한 현대판 춘향이로 이미지가 변화했다.
8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던 춘향이 영화가 13년만에 부활되는 만큼 21세기의 춘향이는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것도 세인의 관심사다.
“효정이의 이미지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갈겁니다. 한국여인의 옛스런 미를 잃지 않고 재능과 끼에 그리고 이몽룡이 한눈에 반했을 만큼 섹시한 지성을 갖춘 여인의 이미지로 그려볼 생각입니다. 변사또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여인의 모습도 간과해선 안되겠지요”
얌전하면서도 섹시하고 그러면서도 빈틈없이 강한 여성이 21세기의 춘향이의 모습이라고 임감독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춘향이의 모습을 효정이는 잘소화해 낼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제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한길만을 보고 노력할래요. 그러기 위해선 이번의 춘향뎐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제법 어른스럽고 자신의 갈길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효정이는 피력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효정이는 “저기요… 잡지언제쯤 나와요. 한권 받아볼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잡지에 사진 나오는 것은 처음 이거든요”
역시 티없는 10대 였다.<서울=유승렬>